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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Tears in heaven’

기사승인 2018.02.26  15: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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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

꽃이 만개하는 4월이 왜 잔인한 달인지를 깨우쳐준 2014년 4월이 드디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이 무지비한 사건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 처박혀있는 무심한 세월호의 몸뚱이처럼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으로부터 여전히 떠나갈 줄을 모른다.

아내를 잃은 남자를 '홀아비', 남편을 잃은 여자를 '과부'라고 부른다. 부모를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는 무심한 아이는 '불효자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자들을 부르는 명칭은 따로 없다. 그건 아마도 “자식 잃은 부모한테 남은 인생 같은 건 없다.”는 영화 < 방황하는 칼날 >의 대사처럼 살아있어도 산목숨이 아니라는 슬픈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식을 잃은 슬픈 부모에게 명칭 따윈 필요 없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투의 약속도 무가치하다. 지금 그들에게, 아니 살아남아 숨 쉬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간절한 위로다. 가슴이 너무 아픈 이웃에게 내어줄 어깨와 그들을 안아줄 품, 그리고 말없이 함께 흘리는 눈물 같은 것들 말이다.

안산의 부모들처럼 가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도 자신의 '피와 뼈'인 아들 코너(Conor)를 잃었다. 네 살짜리 코너는 1991년 3월 20일 뉴욕시 53층 고층아파트에서 가정부가 열어놓은 창문 아래로 떨어졌다. 안전 불감증이 불러온 참사였다.

이처럼 뼈가 아스러지고 살이 찢기는 비극이 발생하기 7개월 전 클랩튼은 자신의 공연을 담당하는 두 명의 매니저와 동료 기타리스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을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잃었다. “고통이 올 땐 소나기처럼 몰려온다.”(When it rains, it pours.)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출신 여배우 로리 델 산토(Lory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코너는 아버지 클랩튼으로 하여금 알코올중독을 극복하게 해준 고마운 아들이었다. 비록 사고 즈음 아들과 함께 살고 있진 않았으나 클랩튼은 좋은 아빠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뉴욕을 찾았던 사고 전날 코너를 데리고 서커스를 보러 갔다. 그것이 아들과 이승에서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사고 직후 클랩튼은 다음과 같이 아들 코너를 기억했다.

“코너가 태어났을 때 난 술주정뱅이였는데, 그 아이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치료소로 들어갔다. 어린애였지만 내 느낌에 그 아이는 나에 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했다.”(When he was born, I was drinking and he was really the chief reason that I went back to treatment because I really did love this boy, I thought, 'I know he's a little baby, but he can see what I'm doing.')

이미 수차례 약물과 알코올 과용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연약한 클랩튼이지만 이번만은 좌절할 수 없었다. 죽은 코너에게 부끄러운 아빠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코카인이나 술 대신 그는 작곡가 윌 제닝스(Will Jennings)와 함께 영화 < Rush >의 사운드트랙작업에 몰두하며 슬픔을 이겨나갔다. 제닝스는 영화 < 타이타닉(Titanic) >과 <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 > 주제곡인 'My heart will go on'과 'Up where we belong' 등을 작곡한 인물이다.

사운드트랙을 마칠 즈음 클랩튼은 제닝스에게 아들에게 헌정할 곡을 하나 만들어 영화에 넣고 싶다고 얘기했다. 처음에 제닝스는 그 엄청난 아픔을 자신이 표현키엔 역부족이라며 거절했지만, 어린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간청을 거절할 순 없었다. 이렇게 탄생한 'Tears in heaven'은 아들을 향한 간절한 그리움과 저승의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게 남은 삶을 살겠다는 아비의 의지를 구구절절 담아내고 있다.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날 기억해줄래?

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모든 게 똑같을까?

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난 강하게 계속 살아가야 해

왜냐면 난 이 천국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Would you hold my hand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you help me stand

If I saw you in heaven?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

'Cause I know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

내 손을 잡아줄래?

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날 일으켜줄래?

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힘들겠지만 살아갈 거야

왜냐면 난 이 천국에 남을 수 없으니까

 

Time can bring you down, time can bend your knees

Time can break your heart

Have you begging please, begging please

세월이 널 망가뜨릴 수도, 무릎 꿀릴 수도 있겠지

가슴을 무너지게 하거나

제발이라며 빌게도 만들 거야

 

Beyond the door there's peace I'm sure

And I know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

천국 문 뒤론 평화가 있으리라고

그리고 더 이상의 눈물은 없을 거라고 확신해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

'Cause I know I don't belong here in heaven

날 기억해줄래?

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모든 게 똑같을까?

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난 강하게 계속 살아가야 해

왜냐면 난 이 천국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Tear in heaven'에서 에릭 클랩튼이 말하는 천국은 두 가지다. 현재 코너가 살고 있다고 믿고 싶은 저승과 과거 그가 있었을 때는 천국이었지만, 현재는 그 의미를 상실한 이승이다. “I don't belong here in heaven.”(난 이 천국에 어울리지 않으니까.)과 “I just can't stay here in heaven."(난 이 천국에 남을 수 없으니까.)에서의 'heaven'이 바로 천국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사는 세상을 말한다.

얼핏 듣기에 곡은 종교적인 느낌의 노래 같지만, 사실은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해 불확실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듯하다. “Would you know my name, if I saw you in heaven?”(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날 기억해줄래?)이나 “Would it be the same, if I saw you in heaven?”(천국에서 널 다시 만난다면, 모든 게 똑같을까?)은 각각 천국이 있다는 확신보다는 천국이 있다고 가정할 때 “네가 날 기억해주고, 모든 게 똑 같겠느냐?”고 묻는 노랫말이라고 보는 게 옳다. 클랩튼 본인도 이 노래가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의문임을 2005년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난 신을 믿지만, 오래된 종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저 세상에서 만나세.'라고 하는 게 맞는 건진 잘 모르겠다. 그럴 경우 곧바로 '그래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라고 하지 않겠나. 이 노래는 바로 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죽은 후에 사람들을 만나는지에 관해. 이 노래가 좋은 점은 질문하고 있다는 것이다.”(I have a belief in a higher power, but I don't really know whether... Most of those old religious things say, 'See you over there.' And you think, 'Really? How do you know?' And the song asked that question. And I'm always wondering whether... we meet people again. I think what works about that song is it's a question.)

“I must be strong and carry on”(난 강하게 계속 살아가야 해.)이나 “I'll find my way through night and day.”(힘들겠지만 난 살아갈 거야.)는 모두 만약 아들과 다시 만날지도 모를 경우를 대비해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성실하게,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클랩튼의 의지를 말해주는 구절이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죽음까지 얼마나 될지도 모를 긴 시간 동안 분명 수많은 아픔과 좌절, 그리고 간절한 매달림 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도 말해주고 있다. “Time can bring you down, time can bend your knees. Time can break your heart and have you begging please.”(세월이 널 망가뜨릴 수도, 무릎 꿀릴 수도 있겠지. 가슴을 무너지게 하거나, 제발이라며 빌게도 만들 거야.)

“Beyond the door there's peace I'm sure.”와 “I know there'll be no more tears in heaven.”은 분명 클랩튼이 소망하는 천국의 모습이다. 어린아이가 그 높은 곳에서 떨어져 온몸이 부서지는 비극 대신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천국,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을 테니 눈물이란 말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천국 말이다.

그런데 이처럼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 같은 슬픔도 점차 희미해지고 결국은 잊게 되는 모양이다. 클랩튼은 2004년부터 공연 레퍼토리에서 'Tears in heaven'을 제외시켰다. 더 이상의 상실감이 없어졌기 때문이란다. 이 노래를 작곡하던 순간, 그리고 매 공연 코너를 떠올리며 노래를 부르던 순간마다 클랩튼의 가슴을 어김없이 무너뜨렸던 슬픔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망각이 신의 최고 선물'이란 상투적인 말은 틀림없는 사실로 입증됐다.

클랩튼의 경우처럼 언젠가 수많은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이 마르고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버린 마음 속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날이 분명 올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바람처럼 언젠가 그들이, 아니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눈물 없는 천국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환한 얼굴로 다시 만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필자 약력>

동서대 임권택 영화영상예술대학 교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각본

방송 <접속! 무비월드 SBS> 진행

이무영 영화감독 kntimes22@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뉴스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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