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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광개토태왕> 1부14장 여명의 기운 - 4

기사승인 2018.03.12  11: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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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③ - 14장 여명의 기운

4

 

하가촌 무술 도장으로 돌아온 을두미는 업복이를 불러 담덕과 대면시킨 후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

“업복아! 이제부터 너는 담덕 공자님의 그림자가 돼야 한다. 공자님이 있는 곳에 네가 없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다. 이제부터 딴 짓하지 말고 공자님을 제대로 보좌토록 하거라.”

“네, 스승님! 공자님을 잘 보좌하면 아버지한테 데려다 주실 거죠?”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로구나. 이제부터 너는 담덕 공자의 그림자가 돼야 한단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느냐? 어딜 간다고 그러느냐? 때가 되면 네 아비가 이곳으로 와서 자연히 만나게 될 테지만, 그때도 너는 담덕 공자의 그림자이므로 아비를 따라갈 수는 없을 것이야.”

을두미의 말에 업복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아니 그러면 스승님! 저는 언제 아버지처럼 해적을 잡으러 가나요?”

“이제부턴 담덕 공자님을 도와서 우리의 국경을 위협하는 외적을 잡아야지. 사내대장부가 돼서 좀도둑이나 잡아서야 쓰겠느냐?”

“그럼 좀도둑에 불과한 해적을 잡는 아버지는 사내대장부가 아니란 말예요?”

담덕이 보고 있는 데도 업복이는 을두미에게 대들 듯이 말했다.

“이 녀석아! 네가 아비만큼만 돼도 큰 성공을 하는 것이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 중 네 아비가 가장 사내대장부답다고 생각한다. 네 아비는 지금 산동반도에서 해적만 잡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고구려의 해상권을 좀 더 확장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질 않느냐? 후일 네 아비는 고구려의 명장이 되어 큰 공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런 염려 말고 너는 공자님을 잘 보필하는데 힘 쓰거라.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무술 강습을 할 것이니, 오늘은 푹 쉬도록 하자.”

을두미는 업복이로 하여금 그동안 마련해놓은 거처로 담덕을 안내하게 했다.

다음 날 아침, 을두미는 담덕에게 활쏘기 시범을 보이게 했다. 어느 정도의 솜씨이기에 국내성에서 명궁으로 소문이 났는지 직접 확인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록 나이는 일곱 살이지만, 담덕은 그 또래의 아이들보다 체구가 컸고 키도 한 뼘쯤 길었다. 특히 팔을 늘어뜨리면 거의 무릎 가까이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어서, 타고난 명궁의 체격을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공자님의 긴 팔을 보니 타고 날 때부터 명궁의 자질을 갖추셨습니다. 우리 고구려를 건국하신 추모대왕께서도 어려서부터 명궁 소릴 들으셨으니, 아마 공자님처럼 보통 사람보다 팔이 길었을 것입니다. 문득 공자님의 긴 팔을 보니, 저 중원 한나라 때 명궁으로 크게 명성을 날린 이광(李廣) 장군이 생각나는군요. 이광은 특히 팔이 길어 활을 잘 쏘았다고 합니다. 긴 팔에 근육질의 팔뚝은 강궁을 잡아당기기에 수월했고,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더 멀리 활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거기에 정확도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명궁이란 소문이 파다하게 났지요. 특히 그가 명궁이란 소리를 듣고, 그것이 후대에까지 전해져 삼국지에 나오는 명궁 화영(花榮)의 호를 이광의 이름을 따서 ‘소이광(小李廣)’이라 부르기도 했답니다. 아무튼 이광은 활을 잘 쏘는 데다 말을 잘 타서 그 빠르기가 비호같다 하여, 당시 흉노군들 사이에서 ‘나르는 장군’, 즉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리기도 했다더군요. 흉노군을 토벌하러 갔을 때도 사냥을 나가면 강궁을 쏘아 여러 마리의 호랑이를 잡곤 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가 아주 가까운 숲속 나무 사이로 언뜻 백호의 웅크린 모습을 보고 활을 쏘았답니다. 마치 그 백호가 자신을 향해 곧 달려들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급히 쏘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활이 백호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걸 보고 달려가 살펴보니, 그것은 얼룩덜룩한 무늬의 백호를 닮은 바위덩어리였더랍니다. 바위에 박힌 화살을 뽑아보려고 하니 너무 단단하게 박혀 잘 뽑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광이 아까 활을 쏘았던 자리로 돌아와 다른 화살을 메겨 바위를 쏘았는데 이번에는 화살이 바위에서 튕겨나가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이 퍼지면서 이광은 전국적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아는 명궁으로 이름을 날렸고, 후대에까지 전해져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을두미는 그러면서 담덕에게, 왜 이광이 처음 쏜 화살은 백호를 닮은 바위에 박혔는데 두 번째 쏜 화살을 튕겨나갔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고 넌지시 물었다.

“사부님, 집중력 아니겠습니까? 첫 번째 화살은 목숨이 걸고 집중을 다해 화살을 쏘았고, 두 번째는 그저 시험 삼아 쏘다보니 집중력이 떨어져 바위에서 튕겨나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담덕의 대답을 듣고 나서 을두미는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벌써 그러한 이치를 깨달으셨다니, 공자님은 앞으로 한나라의 이광 장군보다 더 훌륭한 명궁이 되실 것입니다.”

“그 이치를 아는 까닭도 사실은 전에 사부님께서 활 쏘는 법을 처음 가르칠 때 마음의 집중을 강조하신 덕분입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실력을 쌓아야 이광 장군을 따라갈 수 있을지 감감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이러한 을두미와 담덕의 대화 내용을 듣고만 있던 업복이가 문득 물었다.

“사부님, 정말 이광 장군이 쏜 화살이 바위에 꽂혔을까요? 거짓말 같아요. 빗물에도 씻기는 푸석푸석한 바위라면 모를까.”

“예기 이 녀석! 얘기가 그렇다는 것이지, 좀 새겨서 들어라. 공자님처럼 그런 이야기에서 이치를 깨달을 줄 알아야 명궁이 되지.”

을두미가 업복이를 향해 머리 쥐어박는 시늉을 하였다.

“하여튼 저 때국놈들 뻥치는 데는 뭐가 있다니까. 화살이 어떻게 단단한 바위를 뚫어요? 그렇지 않아요, 담덕 공자님?”

업복이는 익살스럽게 웃으며 담덕을 쳐다보았다.

“사부님 말씀도 맞고, 업복이 네 말도 맞는 것 같구나.”

담덕이 빙그레 웃었다.

“공자님! 이거면 이거고, 저거면 저거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사부님께선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그런 일화를 들려주신 것이고, 이광 장군의 이야기는 아마도 저 중원에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면서 조금씩 과장이 된 것이겠지. 그러니 사부님 말씀도 맞고 업복이 네 말도 맞는 게 아니겠느냐?”

“그게, 그렇게 되나요?”

업복이가 계면쩍은 듯 뒷머리를 쓱쓱 긁었다.

그렇게 주고받는 담덕과 업복이를 번갈아 보라보며 을두미는 소리 없이 웃었다.

활터에서 보여준 담덕의 솜씨는 역시 백발백중이었다. 을두미도 놀라워했고, 업복이는 벌어진 입을 한동안 다물지 못했다.

“공자님의 활솜씨를 확인했으니, 내가 더 이상 가르칠 것은 없고……. 이제부턴 검술을 배우도록 합시다.”

활터를 떠나 을두미 일행이 검술을 배우는 너른 마당으로 나오자, 이미 그곳에서는 장정들이 검술 연습을 하느라 기합 소리가 요란하였다.

을두미는 장정들과 별도로 담덕과 업복이에게만 특별히 집중하여 검술 연습을 시키기로 하였다. 그는 연습에 들어가기 전에 검술 이론부터 강론하였다.

“공자님, 칼의 용도에 대해 말씀해보시지요.”

을두미가 담덕을 향해 말했다.

“적의 목숨을 끊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칼의 용도 중 하나를 맞추셨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검, 즉 사인검(死人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칼의 용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검, 즉 활인검(活人劍)입니다.”

을두미의 말에 업복이가 되물었다.

“스승님, 어떻게 칼로 사람을 살립니까? 칼은 상대를 찌르거나 벨 때 쓰는 무기인데…….”

“사람들은 전쟁을 왜 한다고 생각하느냐?”

“외적이 쳐들어오니까 하지요.”

“그렇다. 외적이 쳐들어와 백성을 괴롭히면 그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고통을 당한다. 따라서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외적을 방어해야만 한다. 검으로 백성을 살리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살인검을 써야 할 때가 있지만, 달려드는 상대에게 겁만 주어 도망치도록 하는 것도 활인검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악한 자 하나가 천 명의 사람을 괴롭힌다면, 그 한 사람을 죽여 천 명을 살리는 것이 활인검이다.”

을두미는 업복을 보고 말하다가 다시 담덕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어서도 백성을 괴롭힐 수 있고 평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활인검의 자세로 군주가 백성을 괴롭히는 탐관오리들을 단죄의 칼로 처단하면, 그것이 곧 활인검이 되는 것입니다. 군주가 폭정을 일삼는다면 백성들이 들고일어나 활인검으로 단죄를 내립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네, 사부님! 마음에 새겨두겠습니다.”

담덕이 짧게 대답했다.

을두미의 검법 강론은 계속되었다. 그는 검법의 4가지 기본에 대하여 말했다.

그 첫째는 안법(眼法)으로 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시선으로 먼저 상대를 제압해야 합니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 눈빛의 변화를 보면 다음 행동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지요. 상대의 눈을 직시하되, 시야를 넓혀 주변 경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 명을 상대로 싸울 때는 뒤통수에도 눈이 있어야 하지요. 사방을 경계하며 싸워야 하므로 뒤에서 공격하는 적은 귀로 들어서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상대의 동작 변화를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둘째는 보법(步法), 즉 발놀림과 신법(身法), 즉 몸놀림이다.

“보법이 중요한 것은 몸의 균형을 잡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발놀림은 빠르면서 정확해야 하고 균형을 유지하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야 합니다. 발을 옮겨놓을 때 그 자세에서 누가 떠밀어도 끄떡 안할 정도로 안정감이 유지돼야만 상대가 급습할 때 유연하게 방어를 할 수 있습니다. 즉 보법은 동작의 마무리가 공격 자세이면서 동시에 방어 자세도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신법은 몸놀림의 기술인데, 이는 보법과 같이 일어나는 동작입니다. 허리의 유연성이 특히 요구되는 검법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뒤좌우 허리를 움직여 적의 칼을 피해야 합니다. 이때 허리의 유연성과 발놀림의 안전성이 유지돼야만 곧바로 상대에게 일격을 가하는 공격 자세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셋째는 격법(擊法)으로, 칼로 치는 기술이다.

“이는 타법(打法) 또는 압법(壓法), 접법(接法)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다 같은 기술을 이르는 말입니다. 즉 상대와 겨룰 때 짧게 치고, 재고, 겨누면서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를 노리는 기술이지요. 상대의 검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는 기술이 또한 바로 이 격법입니다. 이때는 힘을 최소한으로 들여 상대를 위압해 나가야 하고, 그렇게 저축했던 힘은 단 한 번의 칼을 휘두르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힘의 안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그래서 검의 명인은 힘을 쓸 데 없이 소모하지 않기 위해 이러한 격법도 생략할 수 있습니다. 특히 혼자서 여러 상대와 싸울 때는 일격에 상대를 한 명씩 거꾸러뜨려야 하므로 힘의 소모를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그 넷째는 세법(洗法), 즉 칼로 베는 기술이다.

“검술에서는 세법을 한자 뜻 그대로 ‘씻어낸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단 칼에 상대를 베는 기술을 말합니다. 격법에 비하여 동작이 크지만, 그 빠르기는 번개 같아야 합니다. 즉, 칼을 긋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야만 상대가 방어를 하지 못합니다. 동작이 크기 때문에 이 기술이 마무리되고 나서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이때 특히 상대의 역공격을 조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한 번 베어서 실수 없이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 다섯째는 자법(刺法), 즉 칼로 찌르는 기술이다.

“찌를 자를, 찌를 척으로도 발음하므로 ‘척법’이라고도 합니다. 이 기술은 상대의 급소를 찔러 한 칼에 거꾸러뜨리는 것으로, 격법보다 더 정확도가 요구됩니다. 물론 격법도 빈틈이 없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이 기술은 동작이 끝나면서 동시에 방어 자세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법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자법도 몸을 크게 쓰기는 하지만, 숱한 연습 과정을 거쳐 고난도의 기술을 익히면 동작이 끝나면서 동시에 안정된 자세를 취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앞에서 설명한 세법도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긴 합니다만…….”

이처럼 을두미가 설명하는 검법의 강론은 원론적인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듣는 담덕의 눈빛은 매우 반짝거렸다. 반면에 그 옆에 선 업복이는 전부터 늘 들어오던 것이라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업복이는 늘 같은 이론만 반복하는 을두미의 5가지 검법에 대해 강론을 듣다 말고 이광의 활쏘기 이야기가 떠올라 저 혼자 비실비실 웃고 있었다.

그때 을두미가 소리쳤다.

“이놈아, 업복아! 스승이 중요한 검법을 강론하는데 넌 어찌 딴청을 부리고 있는 거냐?”

“네? 아, 네! 드, 듣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라서…….”

업복이는 을두미의 꾸중에도 불구하고 넙죽넙죽 대답을 잘했다. 그런 면에서는 변죽이 아주 좋았다.

“중요한 것이니, 반복하는 거다. 귀 기울여 듣고 실천에 옮길 생각을 해야지.”

그러더니 을두미는 강론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검술 연습에 들어가기로 했다.

검술 연습을 하는 장정들의 기합 소리가 울타리처럼 둘러싼 무술 도장 주위의 숲으로 울려 퍼졌다. 그 소리 때문인지 하늘이 더욱 높아보였다. 근처 숲에서 지저귀는 멧새들의 울음소리도 한가롭게 공중으로 퍼져 오르고 있었다.

 

<엄광용 약력>

-1954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 『사냥꾼들』, 『꿈의 벽 저쪽』, 『사라진 금오신화』 등이 있음.

-2015년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 수상.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novelky

엄광용 작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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