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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광개토태왕> 1부15장 반역의 기류 - 5

기사승인 2018.04.13  09: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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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③ - 15장 반역의 기류

5

 

국내성 동궁 후원 내불전에서 딱따구리의 나무 구멍 파는 소리 같은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사이 사이로 경을 읽는 대사 석정의 염불소리가 기와지붕 처마 위의 허공으로 청량한 바람처럼 울려 퍼졌다.

석정 옆에서는 동궁빈 하씨가 제단 위의 불상을 향해 열심히 절을 올리고 있었다. 이마에서 뚝뚝 땀방울이 떨어져 법당 바닥을 적셨지만 절 동작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후원 숲속 어디선가 뻐꾸기가 울었다. 석정은 문득 경 읽기를 멈추고, 눈을 감은 채 한동안 뻐꾸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고양이의 졸음 같이 찾아온 봄날은 길었고, 하늘에 뜬 해는 여름의 절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목탁 소리가 멈추자, 열심히 절을 하던 동궁빈 하씨도 조용히 앉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자세로 돌아갔다.

“동궁빈 마마! 무엇을 그리 열심히 기도하고 계셨는지요?”

석정이 눈을 뜨고 동궁빈 하씨 쪽을 바라보며 만면에 미소를 흘렸다.

“우리 고구려와 아들 담덕의 앞날을 생각하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동궁빈 하씨는 석정을 바라보지 않은 채 불상을 향한 자세 그대로 대답을 하였다.

“담덕 공자가 그리우신 모양이군요. 하긴 벌써 담덕 공자를 떠나보낸 지 만 사년이 넘었군요. 그때는 나뭇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짙푸른 빛으로 바뀌던 봄날이었는데, 지금은 벌써 해가 네 번이나 바뀌어 뻐꾸기가 우는 늦은 봄이 되었으니…….”

“대사께선 우리 담덕이 국내성을 떠나던 날까지 기억하시는군요.”

“기억하고말고요. 일곱 살 먹은 어린나이에 말을 타라고 하니, 남의 부축을 받지도 않고 소나무 가지를 이용해 말에 오르던 그 의젓한 모습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허면 대사께선 우리 담덕이 얼굴도 또렷이 기억하시겠군요.”

“물론이지요.”

“어미가 돼서 아들 얼굴도 기억을 못하겠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아아, 이 못난…….”

동궁빈 하씨는 그렇게 말하다 말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석정에게 자신의 부끄러운 내면을 들킨 것 같아 어쩐지 멋쩍었던 것이다.

“허허허! 동궁빈 마마의 담덕 공자에 대한 지극한 마음을 알겠습니다. 마음의 거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도 마음의 거리를 두면 또렷이 보이지만, 그 기도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거리가 무너지면 보이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이미 자신의 마음에 부처가 들어와 있는데, 애써 그 형상으로 떠올릴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요. 생각이 곡진하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정성의 지극함이 생각조차 잊게 만드는 것이지요. 동궁빈 마마는 아들에 대한 생각이 너무 깊어 이미 마음속에서 일체화되었기에, 그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듯 여겨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실상은 너무 잘 기억하고 있는 것인데…….”

석정은 마치 설법이라도 하듯 동궁빈 하씨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었다.

“대사께서 하시는 말씀, 이해가 될 듯하면서도 실상은 잘 모르겠습니다.”

동궁빈 하씨는 조용히 일어섰다.

“동궁빈 마마! 잠시 소승이 드릴 말씀이 있으니,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석정은 동궁빈 하씨가 자리에 다시 앉기를 기다렸다가, 시봉을 불러 차를 달이도록 했다. 석정의 시봉을 드는 제자는 전날 을두미가 국상을 제수 받아 국내성으로 들어올 때 데리고 온 동자 명선이었다. 명선도 이젠 제법 나이를 먹어 스무 살의 젊은 승려가 되어 있었다.

“이것은 보이차이옵니다. 장안에서 온 손 행수가 선물로 준 것이온데, 소승도 아직 맛을 보지 못했사옵니다. 며칠 전에 동궁빈 마마께 옥가락지를 선물한 그 진나라 대상 진유량 수하의 행수 말이옵니다.”

“손 행수는 다시 장안으로 떠났겠지요?”

“아마 그럴 겁니다. 지난 번 와서 손 행수가 하는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뭔가 걸리는 것이 있어서 동궁빈 마마께 그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온지?”

동궁빈 하씨는 석정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손 행수가 책성에 다녀왔다 하더군요. 장안에서 서역과 옥 거래를 하는 고구려 출신 중에 조환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전에 동부욕살 하대곤 장군의 호위무사로 있던 두충이라는 자가 바로 그 인물인데…….”

“두충이라면 기억이 납니다. 전에도 가끔 하대곤 장군과 함께 하가촌에 다녀가곤 했지요.”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소승도 전부터 그 자와 만나 적이 있어 잘 아는데, 그 두충이란 자가 오래 전 수곡성 전투에서 백제 장수에게 왼팔을 잘려 자취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자가 아마 그 이후 진나라 수도 장안으로 들어갔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이름을 ‘조환’으로 바꾸고 대상단을 이끄는 진유량 대인의 수하가 되어 행수 노릇을 할 때 장안에 갔던 소승이 다시 만났습니다. 수완이 좋아서 저 서역의 옥 산지인 화전이란 나라의 옥 대상을 만나 장안의 옥 거래 독점권을 땄다 하옵니다. 이번에 손 행수가 가져온 옥가락지도 그 조환이란 자가 보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한데, 그 조환이란 자가 손 행수를 통하여 동부욕살 하대곤과 거래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벌써 여러 차례 거래를 하였다 들었습니다.”

석정은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넌지시 동궁빈 하씨를 바라보았다.

“거래라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비단과 금은보화를 책성으로 보내고, 그 대가로 호피를 가져가는 모양입니다. 그 북쪽의 읍루에서 나는 초피와 태백산 기슭에서 나는 호피를 여러 차례 장안으로 가져간 모양인데…….”

“호피를 무엇에 쓰려고 그렇게 자주 가져가는가요?”

“진왕 부견에게 바치기도 하고, 서역 각국의 제왕들에게 호피를 선물하고 교역을 튼다 하옵니다. 진나라 제후들이나 서역의 제왕들이 호피를 좋아하는 것은, 태백산 호랑이의 이마에 임금 왕(王) 자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 하옵니다. 왕으로서의 권위의 상징이 호피란 것이지요. 그들은 선물로 받은 호피를 깔고 앉아 제왕의 기분을 내며 만족스러워 한다고 합니다. 진왕 부견은 조환이 진상한 호피를 제후들에게 선물로 보내곤 했다는군요.”

“그런 거래라면 뭐 이상할 게 없질 않습니까?”

동궁빈 하씨는 눈치가 빨랐다. 석정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상대의 얼굴을 직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래의 이면에 다른 거래가 있지 않나 해서 말씀드리는 것이옵니다.”

“다른 거래라뇨?”

“자주 금덩어리를 보낸다 하니,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호피를 사가는 값보다 훨씬 넘친다면 결국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동궁빈 마마께선 사사롭게 당숙뻘이 되는 하대곤 장군을 뵌 적이 여러 번 있을 것이옵니다. 소승은 아직 뵌 적이 없사오나, 그 아들인 해평은 한두 번 볼 기회가 있었사옵니다. 마마께서는 해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석정은 이야기를 해평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동궁빈 하씨는 해평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련을 만나기 전에 부친 하대용과 동부욕살 하대곤 사이에 해평과의 혼약을 구두로 약속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던 것이다.

“다른 거래는 뭐고, 해평에 대해서는 왜 물으시는 건지요?”

동궁빈 하씨는 석정이 묻는 이유를 몰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소승이 장안에 잠시 머물 때 전진의 승상 왕맹에게서 관상을 좀 배운 일이 있습니다. 왕맹은 경서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상법(相法)’에 능통한 사람입니다. 한나라 대장군 한신(韓信)이 젊었을 때 그의 상을 보고 권세와 재력을 누렸다는 허부(許負)가 ‘인륜식감(人倫識鑑)’이란 상법 책을 남겼는데, 오아맹은 그 책을 통달했다 하옵니다. 부견이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왕맹이 곁에서 장자방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옵니다. 헌데 왕맹은 부견이 휘하에 두고 있는 모용선비 출신의 장수 모용수와 강족 출신의 장수 요장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충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부견은 이를 듣지 않았습니다. 소승도 그 두 장수를 보았는데, 왕맹에게서 배운 관상학으로 볼 때 턱에 살집이 없어 하관이 좀 빈약해 보이고, 뒤통수가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런 상을 관상학에서는 반역의 상으로 보는데, 그 두 사람이 모두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끝내 부견은 왕맹의 말을 듣지 않고 휘하 장수로 중히 썼는데, 결국 근자에 이르러 두 사람이 모반을 하였습니다.”

석정은 갑자기 전진의 승상 왕맹의 관상 이야기를 꺼내더니, 다시 모용수와 요장의 반역 사건으로 화제를 돌린 후 동궁빈 하씨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던졌다.

“대사는 관상을 믿으십니까?”

“관상은 점과는 다르고, 일종의 통계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맹에게서 관상학을 접한 후, 소승도 조금은 관상에 대해 배운 바가 있습니다만…….”

석정은 말을 끊고 잠시 동궁빈 하씨를 바라보았다.

“그런데요?”

“해평의 관상이 모용수와 요장을 닮았다는 말입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턱이 덜 발달되어 돌출되지 않고 밋밋하게 처져 있는 데다 뒤통수가 유난히 튀어나와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뭣하지만, 반역의 상입니다. 경계해야할 인물이지요. 장안에서 조환이 동부욕살에게 보낸 금덩어리가 대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제에 비밀리에 책성으로 첩자를 보내 동부의 움직임을 알아보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석정의 이러한 말을 동궁빈 하씨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날 밤, 동궁빈 하씨는 이련에게 넌지시 해평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동부의 움직임이 수상하니 첩자를 보내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석정의 말을 전했다.

“나도 하가촌에서 처음 볼 때부터 해평이란 자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소. 무술이 뛰어나기는 하나 성질이 급하고 고집이 센 관계로 전쟁 때마다 사고를 쳤다고 하는데, 어쩐지 철부지 같은 아이에게 날선 칼을 쥐어준 것 같아 불안하기 그지없었소.”

이련은 지난 평양성 전투와 청목령 전투에서 해평이 고집을 세워 공격하다가 실패를 한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해평의 고집 때문에 평양성 전투에서는 부왕을 잃었다. 그리고 청목령 전투에서는 아군이 큰 손실을 입어 군사를 맡았던 을두미가 군령대로 해평의 목을 치려고 했던 것을 대왕이 말리는 바람에 목숨을 구했다는 얘기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다음 날, 이련은 태대형 고계와 만나서 긴밀한 의논을 하였다.

“그렇다면 큰일이군요. 책성에 첩자를 파견하는 일이 시급한데…….”

고계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이련을 쳐다보았다.

“그 일은 내게 맡겨 두세요. 적당한 사람을 택하여 비밀리에 알아보도록 하겠소.”

이련은 그때 마음속으로 적당한 사람을 생각해 두었다. 유청하가 담덕을 따라 하가촌으로 떠난 후 호위무사로 데리고 있는 정호를 떠올렸던 것이다. 정호는 을두미가 태학 유생들 중에서 가장 아끼는 제자였으며, 학문뿐만 아니라 무술도 뛰어나고 병법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모두 을두미가 자신의 학문 모두를 그에게 전수해준 덕분이었다.

태학에서 공부를 마친 유생들 중에서는 지방의 호족 자제들도 더러 있었는데, 이들은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경당(扃堂)을 열었다. 각 지방에 설치된 경당에서는 경전과 무술을 가르쳤다. 이들 경당에서 지방의 평민 자제들에게 학문과 무술을 가르치는 태학 출신 유생들은 모두 정호를 잘 따르는 무리들이었다.

따라서 이련은 정호에게 맡겨 동부 지역의 경당에 첩자를 파견해 작금의 책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낱낱이 보고토록 하면 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국상 연소불 주위에도 감시를 붙여야 할 것이옵니다. 연소불의 사위가 해평이지 않습니까? 따라서 국상 연소불과 동부욕살 하대곤은 사돈관계이고, 전부터 그들 사이에 비밀히 소통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고계가 소리를 죽여 말했다.

“허면, 국상의 주변은 태대형 대감께서 맡아주세요. 적당한 사람을 택하여 비밀리에 알아보도록 하시는 게 좋을 것이오. 국상이 절대로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알겠사옵니다. 왕제 전하!”

고계와 이련은 눈빛으로 서로의 밀약을 재확인하였다.

 

<엄광용 약력>

-1954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 『사냥꾼들』, 『꿈의 벽 저쪽』, 『사라진 금오신화』 등이 있음.

-2015년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 수상.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novelky

엄광용 작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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