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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지석탑 20년만에 복원, 동탑과 달랐다

기사승인 2018.06.21  18: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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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 석탑 수리 후 동쪽 옆 모습.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코리아뉴스타임즈] 전라북도 익산 미륵사지 서쪽 석탑(국보 제11호)이 20년간의 보수작업을 마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복원작업을 주도해온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일 익산 미륵사지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고 복원이 끝난 석탑의 모습을 공개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7세기 백제 무왕 대에 창건된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이다. 미륵사에 위치한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있으며 백제 목조건축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조선시대 이후 구조물의 절반 이상이 무너진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1915년 일제가 콘크리트를 덧씌워 임시로 보강 조치를 했다. 하지만 콘크리트 노후화와 구조적 불안정성을 이유로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해체 및 수리를 결정했다.

1999년에 시작된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보수작업은 당초 2007년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계획보다 10년 이상 완료시기가 늦춰졌다. 단일 문화재 수리 기간으로 20년의 시간이 걸린 것은 미륵사지 석탑이 처음이다. 화재로 전소된 숭례문은 복원에 5년 3개월, 석가탑은 6년이 걸렸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 투입된 예산은 230억원으로 숭례문(250억원)에 이어 2위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에 많은 예산과 시간이 들어가자 일각에서는 예산을 횡령한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받기도 했다. 실제로 2007년에는 전주지검에서 복원사업단이 사업비를 횡령한 정황이 의심된다며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1998년 이후 80억원의 예산을 들였는데도 10년간 복원 작업이 완료되지 못한 점, 9층으로 예상되는 석탑을 6층까지만 해체한 점 등이 의혹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복원 작업이 길어진 이유는 복원사업단의 신중한 접근 때문이었다. 유사한 복원사례를 찾기 어려운 동양 최대의 석탑 보수작업이기 때문에, 기존의 복원 기술을 관행처럼 사용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알수 없었다. 복원사업단은 원형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각종 학술 연구를 병행한 뒤, 그 결과를 보수 작업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단계를 밟아나갔다. 복원사업에 참여한 연구소 김현용 연구사는 “유사 사례가 없는 석탑이기 때문에 현황 분석과 원형의 고증, 수리방법론의 개발 등에 만전을 기했다”고 밝혔다.

창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되살리려다보니 복원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많았다. 특히 일제가 보강용으로 덧씌운 콘크리트의 경우 예상 외로 강도가 높아, 제거작업에만 3년이 걸렸다. 치과용 드릴까지 사용된 제거작업에서 수거된 콘크리트만 무려 185톤이다. 또한 원형 보존을 위해 구재의 81%를 재사용하는 한편, 인접지역에 매장된 화강암을 캐서 신재로 사용하기도 했다.

복원을 몇 층까지 할 것인지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당초 미륵사지 석탑은 형태상 원래 9층이었던 것으로 추정돼 복원사업단도 9층까지 복원하라는 압력을 받았으나, 내부 논쟁 끝에 원래 남아있던 6층까지만 복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추정에 의한 복원은 미륵사지 석탑이 지닌 역사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재를 81%나 사용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고, 부서진 부분도 완전히 대체하기 보다는 신재 일부를 접합시켜 되살리는 방식을 활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겪으며 변해온 석탑의 모습 자체가 역사의 일부라는 복원사업단의 철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의 세계유산 등재 조건이기도 하다.

과거 미륵사지 석탑 발견 당시의 모습. 뒷면의 경우 기존 구조물이 완전히 무너져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느리고 신중한 복원사업은 미륵사지 동탑이라는 반면교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호남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한 선심성 행정으로 시작된 동탑 복원사업은 2년 만인 1993년 속전속결로 마무리됐다. 새로운 복원기술을 고민하고 구재를 최대한 활용한 서쪽 석탑 복원사업과 달리, 현대 복원 기술을 고민 없이 적용하고 기계로 깎아낸 하얀 화강암을 신재로 활용해 시간이 크게 단축된 것. 이 때문에 서쪽 석탑과 달리 동탑에는 석공이 일일이 정으로 쪼아 만든 석재 특유의 질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동탑의 경우 원형 확인을 위한 학술연구도 없이 서쪽 석탑의 모습을 그대로 본 따 복원됐다. 동탑과 서탑이 같은 형태였는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빠른 사업 진행을 위해 문화재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복원사업이 추진된 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알려진 유홍준 교수는 지난 2004년 서탑 해체 조사보고회에서 “미륵사지 동탑이야말로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20년에 걸쳐 진행된 미륵사지 석탑 복원사업은 동탑 복원에 대한 반성 속에서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졸속 복원을 지양하고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살리고자 한 미륵사지 석탑 복원사업은 국내 문화재 복원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수리 과정에서 5건의 특허도 획득하는 둥 문화재 기술사 적으로도 한 획을 그었다”고 자평했다.

한편 국립문화재연구소는 7월 말 가설시설물 철거 및 주변 정비 작업을 위해 잠시 현장 개방을 중단할 예정이다. 연구소는 정비가 끝나는 12월부터 미륵사지 석탑의 완전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복원과정을 담은 보고서 발간, 기술교육, 학술행사 등을 통해 성과를 공유해나갈 계획이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뉴스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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