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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인문학(12)] 투력鬪力①- 쉼 없는 땀방울이 철벽을 뚫는다

기사승인 2018.10.16  13: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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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磨斧作針)=뭉툭한 도끼도 계속 갈면 마침내 바늘이 된다. 쉼 없는 단련이 강자를 만든다. 고난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꿈을 이루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반복은 기적을 일구는 힘이다.

 

무슨 일이든지 오래 되풀이하다보면 그 일이 몸에 붙어 익숙해진다. 그러면 누구와 겨뤄도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고 마음에 힘이 솟는다. 위기구품에서는 그런 단계를 투력(鬪力)이라고 일컫는다. 투력은 “힘이 붙어 비로소 싸울만하다”라는 뜻으로 바둑의 프로기사 3단의 별칭이다.

 

싸우려면 무엇보다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오랜 반복 훈련이 있어야 비로소 생기게 된다. <바람의 파이터>라는 영화로 잘 알려진 최배달, 곧 극진 가라테의 창시자인 최영의는 이런 어록을 남겼다.

 

“천 일의 연습을 단(鍛)이라고 하고, 만 일의 연습을 련(鍊)이라고 한다. 이 단련이 있고서야 비로소 승리를 기대할 수가 있다. 승리에 우연은 없다.”

 

천 일, 만 일 동안 부단히 갈고 닦는 훈련이 없으면 승리도 없다는 것이다. ‘천단만련(千鍛萬鍊)’은 무예 수련자들이 가슴에 새기는 명언으로, 원래는 최영의가 닮고 싶어 했던 일본의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가 남긴 말이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평생 60여 차례의 진검승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바람의 파이터’ 최영의도 세계적인 무술 고수들과 100여 차례 실전 대결을 벌여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패 신화를 남겼다. 미야모토 무사시나 최영의가 전설적인 고수가 된 것은 그들이 말한 대로 천 일, 만 일에 이르는 뼈를 깎는 단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영의는 “반복이 힘이다”라고 말한다. 시합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힘은 타고난다기보다 부단한 반복훈련을 통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최영의가 남긴 어록 중에 ‘333법칙’이라는 것도 반복훈련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어떤 기술이든지 300번 연습하면 흉내를 낼 수 있고, 3천 번 연습하면 실전에서 쓸 수 있고, 3만 번 연습하면 몸이 그 기술을 기억하여 무의식중에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은 ‘손의 기억’이라고 한다. 머리로 배우는 게 아니라 손으로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손의 기억’은 자기가 직접 해봐야 얻을 수 있다. 명인의 기예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부단한 연습을 통해 스스로 익혀야 한다.

머리는 금세 잊어도, 손은 잊지를 않는다는 말이 있다. 최영의의 ‘333법칙’처럼 오랫동안 반복해서 익힌 기술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잊어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고수는 속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천 일, 만 일의 땀에 젖은 시간이 있어야만 고수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명심보감> 계선편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하루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금방 복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화는 저절로 멀어진다. 하루 나쁜 일을 한다고 해서 금방 화를 입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복은 저절로 멀어진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날이 자라난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지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날이 닳고 있다.”

 

화와 복, 성공과 실패라는 열매는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거두게 된다. 숫돌은 그 닳는 것이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가루가 되는 날이 온다. 부단히 반복해서 노력하다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룰 수 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었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고사성어가 이를 보여준다.

 

당나라의 시선(詩仙) 이백은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특출해 열 살 무렵에는 시와 글씨가 어른을 능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백은 진득이 앉아 공부하는 데는 그다지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아버지는 그에게 훌륭한 스승을 붙여 주고 산속에 들어가 오로지 학문에 정진하도록 했다.

천재들이란 원래가 호기심이 많아 한 곳에 매이기를 싫어하는 법이다. 외딴 산속에 처박혀 글만 읽는 생활이 이백의 구미에 맞았을 리가 없다. 따분함을 견디다 못한 이백은 스승 몰래 산에서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직 어린 아이인지라 아버지에게 혼나고 말고는 나중 일이었다.

이백이 한참 산 아래 마을을 향해 가는데 어느 냇가에 이르러 발걸음이 딱 멎고 말았다. 웬 할머니가 바윗돌에다가 도끼를 갈고 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뭘 하고 계세요?”

“응, 바늘을 만들고 있단다.”

“아니,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고요?”

“그래. 보면 모르겠니?”

이백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유, 할머니. 도끼를 어떻게 바늘로 만들어요?”

“웃지 말거라. 열심히 갈다보면 언젠가는 도끼도 바늘이 되겠지. 도중에 그만 두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 순간 이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표정으로 한동안 서 있던 이백은 할머니에게 공손히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발길을 되돌려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크게 깨달은 이백은 그 후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그 할머니를 떠올리며 분발했다고 한다.

 

고사성어 ‘마부작침’은 과장된 비유가 아니라 엄연한 실제이기도 하다. 가령 명필인 추사 김정희는 칠십 평생에 벼루 10개를 구멍 냈고, 1000여 자루의 붓이 닳아서 몽당붓을 만들었다고 한다. ‘마부작침’은 한자성어 ‘수적천석(水滴穿石)’의 동의어로도 쓰인다. “쉼 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처럼 부단히 붓질하다 보면 단단한 벼루에 구멍이 나기도 한다.

 

바둑동네에도 물방울이 바위를 뚫어버린 일화가 있다. 사제지간으로 잘 알려진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조훈현 9단은 이창호가 아홉 살 때 내제자로 그를 받아들였다. 내제자란 스승의 집에서 함께 살면서 한솥밥 먹으며 배우는 제자를 가리킨다. 당시 일을 조훈현 9단은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창호와 처음 지도 바둑을 두었을 때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승패를 떠나 아홉 살짜리 꼬마가 벌써 자기 바둑을 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퉁퉁해서 다소 둔해 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가끔씩 번쩍번쩍하는 대목이 있었다. 데려다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내제자가 된 이창호의 발전 속도는 스승의 기대만큼 빠르지 못했다. 재기발랄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게 과묵한 아이였던 이창호는 심지어 그날 낮에 둔 바둑조차 복기를 잘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천하의 조훈현이 내제자로 받아들인 바둑 천재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과묵한 소년인 이창호는 날렵하고 화려한 기풍인 스승과는 다른 타입의 천재였다.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창호의 실력은 봄의 풀처럼 스승의 뜰 안에서 나날이 자라고 있었다.

 

하루는 조훈현 9단의 부인이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깨었더니 어디선가 “똑, 똑, 똑” 하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그 소리를 쫓아가 보니 2층 이창호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새벽 2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인데 그때까지도 이창호는 잠을 자지 않고 바둑을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똑, 똑, 똑…” 하는 바둑돌 놓는 소리를 엿듣던 조훈현 9단의 부인은 창호가 대견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과연 이창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승이 갖고 있는 타이틀을 하나 둘 씩 뺏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내 타이틀을 모두 휩쓸어 전관왕이었던 조훈현을 무관의 제왕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대 무적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조훈현의 아성은 제 손으로 키운 제자에 의해 무참히 무너졌다. 한밤중의 ‘똑, 똑’ 하는 물소리가 마침내 조훈현이라는 거대한 바위를 뚫어버린 것이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려면 이창호처럼 부단히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아무리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어도 노력이 없이는 꽃을 피우지 못한다. 선천적인 능력이 있으면 좋기는 하지만 그것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성공이라는 정상에 오르는 이들은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조금 부족해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토끼와 거북’ 우화가 그것이지만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이 지은 ‘등산설(登山說)’이라는 우화도 똑같은 교훈을 담고 있다.

 

노(魯)나라에 아들 삼형제가 있었는데 첫째는 착실하나 다리를 절었고, 둘째는 호기심이 많으나 몸은 온전했고, 셋째는 경솔하나 용력이 뛰어났다. 하루는 둘째와 셋째가 태산 꼭대기에 누가 먼저 오르나 내기를 했다. 그러자 다리가 불편한 첫째도 따라나섰는데, 이를 보고 둘째와 셋째가 비웃었다.

“태산은 구름보다 높아서 다리가 튼튼한 사람도 오르기 어려운데 어쩌려고 그러오?”

첫째는 꼴찌로라도 산꼭대기에 오를 수만 있다면 괜찮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삼형제가 태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 둘째와 셋째가 다시 말했다.

“우리는 가파른 벼랑도 단숨에 오를 수 있으니 형부터 먼저 올라가오.”

그 말대로 첫째는 쉬지 않고 태산을 올랐고, 두 동생은 딴 짓을 하며 여유를 부렸다. 셋째는 자신의 날렵함만 믿고 계곡과 샛길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날이 저물어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호기심 많은 둘째는 산 중턱에 이르러 봉우리와 절벽을 구경하며 한눈팔다가 어둠이 깔리자 무서워서 돌아내려갔다. 그러나 다리가 성치 못한 첫째는 경치구경할 엄두도 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올라 마침내 정상에 다다랐다. 이를 들은 삼형제의 아버지가 말했다.

“공자의 제자들도 너희와 마찬가지였다. 용맹한 자로와 재주 많은 염구는 스승의 담장에 이르지 못했지만 노둔(魯鈍 ․ 어리석고 둔함)한 증자는 도달했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산 정상에 오른 것은 몸이 튼튼한 둘째와 셋째가 아니라 다리를 저는 첫째였다. 가장 재능 없는 자가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셈이다. ‘토끼와 거북’처럼 익숙한 결말이지만 곰곰이 새겨보면 실은 놀라운 반전이다.

성공의 고지를 밟는 사람들은 세상의 생각처럼 능력 많고 똑똑한 사람들인 것만은 아니다. 도리어 서툴더라도 우직하고 근면한 사람들이 큰일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공자의 제자들에게서도 보았듯이 스승의 뒤를 이어 성인이라 불린 사람은 노둔한 증자였다.

 

“얼음 석자는 하루 추위에 언 것이 아니다”는 속담이 있다. 성공과 실패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어느 날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승리에는 우연이 없다. 천 일, 만 일의 쉼 없는 연습이 승리를 가져다준다. ‘투력’ 즉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은 오랜 훈련에서 나온다. 쉼 없는 노력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반복은 불가능을 뚫는 힘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물방울이 바위도 뚫는데 천 일, 만 일 쉼 없이 흘린 땀방울이 뚫지 못할 벽이 어디 있겠는가.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김태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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